하얀쉼표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

어린시절.. 2017. 4. 15. 05:30

 

사랑에도 속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솔잎혹파리가 숲을 휩쓰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한 순간인 듯 한 계절인 듯..

마음이 병들고도 남는 게 있다면...


먹힌 마음을 스스로 달고 서 있어야 할

길고 긴 시간일 것입니다.. 


수시로 병들지 않는다 하던

靑靑의 숲마저 예민해진 잎살을 마디마디 세우고...


스치이는 바람결에도

빛 그림자를 흔들어댈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단풍이 든 것만 같아

그 미친 빚마저 곱습니다..


  


나희덕/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길 위에서/ 나희덕

 

 

 

Melanie Saf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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