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속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솔잎혹파리가 숲을 휩쓰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한 순간인 듯 한 계절인 듯..
마음이 병들고도 남는 게 있다면...
먹힌 마음을 스스로 달고 서 있어야 할
길고 긴 시간일 것입니다..
수시로 병들지 않는다 하던
靑靑의 숲마저 예민해진 잎살을 마디마디 세우고...
스치이는 바람결에도
빛 그림자를 흔들어댈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단풍이 든 것만 같아
그 미친 빚마저 곱습니다..
나희덕/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길 위에서/ 나희덕
Melanie Saf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