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모국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은 편견에 가득 차 있다..
-카를로 골드니(이탈리아 희극작가)-
어제 마신 보드카 덕으로 깊은잠을 자고 일어났다.
깔끔한 조식과 챙겨간 커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러시아정교회성당은 카톨릭이지만 로마 카톨릭과는 다르다..
여러 성현들을 신들과 모셔놓고 간절히 바라는 소원에따라
그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는 곳이란다..
신한촌기념비는..
조선의 정치 불안과 빈곤으로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가 시작되었던
1863년 하산지역 남쪽을 중심으로 최초의 한인촌이 생겨났다..
1870년대 8,400명으로 집계된 연해주 한인 이주민의 수가
1923년에는 12,000명까지 이르게 되었고...
1929년 하산지역 북부 포세에트 항구 한인마을은
한인극장과 문화회관은 물론, 한인자치기관을 두고 있었으며,
행정기관에서는 한글을 사용하는 등,
한인정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1937년 소비에트 인민위원회의 강제이주 명령에 의해
2차례에 걸친 연해주 한인 강제이주가 집행되면서
현재 러시아, CIS 국가에 산재해 있던 고려인 동포들의
한과 설움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간 한인촌은 일제침략 때 항일운동에 크게 기여한 지역으로
많은 독립지사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999년 8월 한민족연구소가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연해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기리고,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신한촌에 기념비를 설립하였다.
이에 ‘2002 한-러 친선특급 시베리아철도 대장정’도
항일 독립운동사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신한촌 항일운동 기념비
앞에서 그 첫발을 시작하였다.
독립 투사 자손의 헌신어린 노력으로 신한촌 건설하여 그뜻을 기르고
후대에 그뜻을 알리고자 콘테이너에 기거하며 이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도 꿋꿋이 살아 가는 모습을 보고
새삼 가슴이 뭉클해지고 한민족의 민족성에 자부심도 생겼다..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희생하신 선조님들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얼마 남지않은 루블화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한인들의 권익과 역사회복에
사용한다는 신한촌 관리회에 기부했다..
By내가..
170221
너의 자유로운 혼이 가고 싶은 대로
너의 자유로운 길을 가라..
너의 소중한 생각의 열매들을 실현하라.
그리고 너의 고귀한 행동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말아라..
보상은 바로 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네 자신이 너의 최고 심판관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너는 너 자신의
작품을 심판할 수 있다.
너는 네 작품에 만족하는가?
의욕 많은 예술가여!
네가 황제다. 고독하게 살아라.
시인에게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1799 -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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